박치음 2005

2006. 7. 16. 17:03음악/CD_DVD_Vinyl(LP)

최근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단연 심규현님께 선물 받은 박치음 2005 음반입니다.
개인적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음반이지만... 미처 구입을 못한 터에 예상치도 못한 선물을 받아 너무 너무 기뻤었지요~~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이문학회에서 주최한 박치음 라이브(2005.6.9) 음원을 원본으로 원일이 각 곡마다 추가적인 편곡으로 악기를 덧입힌 음반이라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영규, 정재일, 이지상 님을 비롯하여, 제게는 생소한 박경소, 허윤정 님이 참여하였습니다.

1. 소쩍새 [2005 봄] 4:09
2. 여 행 [2003 봄] 2:42
3. 이 외로운 별에서 [2001 봄] 3:10
4. 미안해요 베트남 [2000 봄] 5:15
5. 목계장터 [1995 가을] 4:29
6. 산국화 [ 1994 가을] 4:17
7. 내사랑 한반도 [1988 여름] 4:01
8. 우리들의 사랑법 [1985 봄] 3:26
9. 가자 가자 [1980 겨울] 3:47


라이브 원본을 감상하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mpl.sunchon.ac.kr/cotent/ParkChiUm.htm


모든 음원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2006.04.04 한겨레 21에 실린 기사입니다.
원문 링크 : http://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6/04/0210150002006040406040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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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이 어둠을 뚫고, 소쩍소쩍…

노래운동의 어제와 오늘을 확인시켜주는 가객 박치음의 두번째 음반… 타악연주가 원일이 거든 소리의 향연, 한학자 노촌 선생에게 바치다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금부터 25년 전 일단의 무리가 경기도 원당에 있는 야산의 7부 능선에서 만났다. 이날 군사정권의 감시망을 뚫고 식목일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위장해 산길에 접어든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문화운동 일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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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진정성을 담은 노래로 물질문명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 박치음씨가 지난해 6월9일 열린 콘서트 <2005 소쩍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사진/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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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감옥에 있던 김지하씨가 ‘작은 공연’을 기획했고 연출은 김명곤(문화관광부 장관)씨가, 안무는 채희완(부산대 교수)씨가 맡았다. 서로의 굳은 의지를 확인하는 공연이 끝날 무렵 갓 대학을 졸업한 한 공학도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낮은 어둡고 밤은 길고/ 허위와 기만에 지친 형제들/ 가자 가자 이 어둠을 뚫고/ 우리 것 우리가 찾으러” ‘가자 가자’(일명 ‘전진가’)라고.

<진짜 사나이>를 사라지게 한 <가자 가자>

198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민중가요로 기억되는 <가자 가자>는 외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가자 가자>는 발표 3개월 만에 속된 말로 ‘대박’이었다. 대학생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우리 것 우리가 찾으러 가자’는 노랫말이 들려왔다. 이 노래를 골방에서 만들어 산속에서 발표한 박치음씨도 놀랄 정도였다. 이는 노래를 만들면서 염두에 뒀던 게 적중한 것이기도 했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노래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8마디로 짧게 만들었어요. 이 노래를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부르기도 했습니다. 박치음이 축가로 <가자 가자>를 부르면 결혼 생활을 원만히 한다는 ‘속설’이 나돌았거든요.”

그렇게 박치음씨가 <가자 가자>를 30여 명의 문화운동가들 앞에서 부른 지 사반세기. <가자 가자>는 1980년대 초반 대학가 시위 현장에서 <진짜 사나이> 같은 군가가 사라지는 데도 이바지했다. 여전히 <가자 가자>는 민중가요의 주요 레퍼토리에 속한다. 지난 3월7일 가수 안치환씨가 내놓은 음반 <비욘드 노스탤지어>(Beyond Nostalgia)에도 <가자 가자>가 수록돼 있다. 물론 안씨가 부르는 <가자 가자>는 박씨가 작곡한 것과는 차이가 많다. 음정이 다르고 가사도 덧붙여졌다. 박씨는 가사를 1절만 썼는데 무려 20절까지 덧붙여지기도 했다. 이런 뜻에서 <가자 가자>는 대중의 입을 통해 만들어졌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최근 박치음씨는 2집 음반에 <가자 가자>의 원곡을 실었다. 노래 인생 25년 동안 “고작 2집”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씨가 ‘대학교수 겸 작곡가’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예사로운 결실이 아니다. 그것도 ‘데뷔’ 18년 만에 1집 음반 <혁누망운>(1999, 혁명 누명 망명 운명을 뜻함)을 내고, 다시 7년 만에 2집이 나온 것은 ‘서두른’ 느낌도 있다. “1980년 말에서 2005년 봄까지 만든 100여 곡 가운데 9곡을 골랐어요. 여기엔 장기수로 22년 동안 수감됐던 한학자 노촌(老村) 이구영 선생을 위해 만든 <소쩍새>(2005)라는 노래도 있어요. 요즘 건강이 좋지 않으신 노촌 선생께 음반을 빨리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이번 2집은 박치음씨가 노촌 선생에게 바치는 ‘헌정 음반’이라 할 만하다. 박씨는 노촌 선생이 이끄는 ‘이문학회’(以文學會·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어짊을 돕는다는 뜻)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씨의 이문학회 활동은 노래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반전반핵가>(1986), <내 사랑 한반도>(1988) 같은 이슈 지향적인 노래에서 <미안해요 베트남>(2000,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죄 헌정곡), <이 외로운 별에서>(2001, 사형제 폐지 헌정곡)처럼 평화의 염원을 담은 것까지가 1기라면, 노촌 선생의 영향을 받아 물질문명으로 인한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마음을 담은 <소쩍새>는 2기의 시작이라 하겠다.

실황녹음 테이프에 해금·거문고 얹어

“<가자 가자>에서 <소쩍새>에 이르는 과정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어요. 목표 지점이 상대방에서 서서히 스스로의 내면으로 옮겨온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명상이나 치유 음악을 지향하는 게 아닙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귀기울이는 치유를 위해선 투쟁의 과정이 필수적이죠.” 박치음씨의 2집 음반이 지난해 6월9일 이문학회 고택의 마당에서 열린 <박치음 콘서트 2005 소쩍새> 공연 실황녹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도 의미 있는 대목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선비를 통해 깨달은 바를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문학회는 역사적 필요에 바탕한 예술적 감수성의 텃밭 구실을 했다.

애당초 박치음씨의 <소쩍새> 공연에서는 자연음향 기타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음반에는 다양한 악기 연주를 덧입힌 소리가 들린다. 여기엔 80년대 중반 박씨와 함께 <민족극 한마당>과 <이 땅의 춤을 위하여>, <통일노래 한마당> 등의 공연을 준비했던 타악연주자 원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의 수고가 오롯이 새겨졌다. 원일씨는 박씨에 대해 ‘문화운동의 사부’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당시 연주자로서 박 선배가 준비하는 공연에 참여하면서 세상을 배울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는데 영화 <아름다운 시절> 음악을 맡으면서 다시 만나 2집 음반의 프로듀서로 나서게 됐다.”

어쩌면 박치음씨의 2집 음반은 원씨의 헌정 음반인지도 모른다. 박씨는 실황녹음 테이프 하나를 던졌을 뿐이다. 그것을 원씨가 10개월 가까이 매만져 폼나는 음반으로 탈바꿈시켰다. 원씨는 편곡과 함께 타악과 태평소, 피리 등을 연주하면서 다른 ‘음악 친구’들이 음반 제작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전대협 노래패 출신의 민중가수 이지상씨가 하모니카를, 어어부밴드 출신의 장영규씨가 컴퓨터 음향 등을 맡았고, 가야금의 박경소씨, 거문고의 허윤정씨 등도 참여했다. 대중음악계의 천재적 기타연주자 정재일씨는 기타 연주와 함께 편곡을 거들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박치음과 원일’의 오래된 ‘우정’을 북돋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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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제작을 맡은 원씨의 고민은 시작됐다. 쉽게 모일 수 없는 연주자들이 곡마다 실력을 발휘해 나름의 해석을 곁들인 만큼 연주를 풍부하게 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박치음씨 노래 특유의 정제된 선율에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메시지를 전하는 가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결국 원씨는 9곡의 노래에 제격인 악기 한두 개의 연주를 곁들이기로 했다. 예컨대 <가자 가자>에는 태평소와 타악을, <목계장터>에는 거문고를, <미안해요 베트남>에는 해금을 대표악기로 선정하는 식이었다. 이로 인해 원씨는 작업의 절반 이상을 연주음 덜어내는 데 할애해야 했다.

상업적 판매 거절, 공짜로 내려받을 수 있어

이런 험난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박치음씨의 2집 음반은 우리 시대의 노래와 유통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박씨의 탁월한 선율 감각은 당대의 가객으로서 모자람이 없다. 김민기를 넘어선 노래운동의 결실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것이 노래운동의 어제와 오늘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라면 유통 방식은 내일을 예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박씨의 2집 음반은 고작 1천 장 발매됐다. 그것도 대부분 용도가 있는 것으로 상업적 판매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박씨가 음반을 꼭꼭 숨기는 것은 아니다. 박씨의 공연실황과 음반 수록곡은 이문학회 카페(http://cafe.daum.net/imoon90)에 있는 ‘박치음 음악실’에 들어가 공짜로 들을 수 있다.

현재 박치음씨는 전남 순천의 겨우 전기만 들어오는 산속에서 살고 있다. 박씨가 공학 교수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아이러니로 여겨진다. 문명을 거부한 유나보머는 산속으로 들어가 폭탄을 만들었지만 박씨는 자연과 역사, 평화 등을 노래에 담으려고 한다. 영혼의 트라우마 극복이라는 테마를 노래에 새기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래운동의 결실로 한국적 음악을 만날 수 있으리라. 오는 8월 마지막 주에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열리는 세계도서관학회 심포지엄에서 새로운 음악의 진면모가 드러날 듯하다. 이날 박씨는 국내외 학자들에게 선(禪)을 떠올릴 만한 한국의 노래를 들려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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